접경지역및통일연수

북중러 연수

북·중·러 접경지역 탐방지

- 북·중·러 국경지역 탐방을 통해 접경지역 활용 실태를 살펴보고, 한반도 접경지역과 DMZ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시사점 도출,
  남북 교류협력 방안 모색에 목적이 있습니다.
- 중국, 러시아와 접경한 북한지역을 조망하며, 통일과 북한 그리고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워크숍과 탐방으로 진행됩니다.

지도

코스

일차 방문지 주요내용 관련 북한 지역
1 인천 - 심양 단동으로 이동 [평안북도]
신의주, 의주
삭주. 위화도, 황금평
단동

● 단동워크숍 : 단동시 회의실

● 단동 및 황금평 시찰
: 압록강철교, 단교, 위화도, 호산장성, 조선전쟁기념관 등

1일차 특징

ㅇ북중 무역의 70%를 차지하는 단동지역에서 대북투자 및
국경무역에 관한 강의와 대북사업관련자들과의 세미나 개최

2 집안
통화
장백

● 집안 및 통화 시찰
: 광개토대왕비/릉, 장군총, 환도산성, 오호묘 등

[자강도]
수풍댐
만포
중강진
2일차 특징

ㅇ중국의 동북공정 현황 및 고구려 역사에 대한 강의

3 장백
백두산

● 장백 시찰
● 백두산 등반

[양강도]
김형직군
김정숙군
고읍
혜산시
백두산
3일차 특징 ㅇ민족의 기상, 백두산 탐방
ㅇ최근 북한에서의 한류현상 및 한국산 제품 확산에 대한 강의
ㅇ중국의 백두산 개발 현황에 대한 강의 및 현장 점검
4 연길
용정
도문

● 연길 워크숍
: 연변과학기술대학교 회의실

● 용정 및 도문 시찰
: 대성중학교, 윤동주 생가, 명동촌, 일송정, 해란 강 등

[함경북도]
남영
4일차 특징 ㅇ북·중·러 교류협력 현황과 북한정세를 주제로 연변대학교 및
연변과학기술대학교 학자들과 한·중 세미나 개최
5 방천
훈춘

● 방천 북·중·러 3국 접경지 시찰
: 망해각, 녹둔도

● 훈춘 시찰
: 두만강대교

● 도문 시찰
: 도문대교, 도문광장, 탈북수용소 등

[함경북도]
온성
고성
새별
아오지탄광
은덕
5일차 특징 ㅇ훈춘 지역의 북·중 및 북·러간 교역 현황에 대한 강의
6 삼 합
무 산
연 길
인 천
● 삼합 시찰
: 북·중 세관
[함경북도]
회령
망양

주요 탐방지역

단동(丹東)/압록강철교(鴨綠江鐵橋)

사진1

평안북도 신의주와 중국 단둥[丹東]을 잇는 다리로서 한반도와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을 연결하는 관문이다. 1911년과 1943년 2개가 가설되었는데 하류 쪽에 먼저 가설된 다리는 6·25전쟁 때 파괴되어 중국에 연결된 절반만 남아 있고, 상류 쪽의 다리는 1990년 조중우의교(朝中友誼橋)라 개칭되었다(두산백과 2014).

박작성(泊灼城)

사진2

645년(보장왕 4)에 당태종의 대규모 고구려 침략이 실패한 지 3년 후인 648년에 태종은 대규모 전함을 축조케 하는 한편, 설만철(薛萬徹)로 하여금 3만여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의 박작성을 공격케 하였다. 설만철이 압록강을 거슬러 박작성 남쪽 40여리 지점에 진영을 갖추자, 당시 박작성 성주(城主) 소부손(所夫孫)이 1만여명의 군대로 대항하여 성을 지켰으며, 고구려 장군 고문(高文)이 오골성(烏骨城)과 안시성(安市城)의 군대 3만여기를 거느리고 구원하였다고 한다.

위화도(威化島)

사진3

압록강의 하중도(河中島)로 압록강이 운반한 토사(土砂)의 퇴적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고려시대에는 대마도(大麻島)라 하여 국방상 요지였다. 1388년(우왕 14) 5월 요동정벌 때 우군도 통사(右軍都統使) 이성계(李成桂)가 이곳에서 회군(回軍)을 단행함으로써 조선을 여는 역사적 계기가 된 곳이다.

수풍댐(水豊─)

사진4

1937년 10월에 압록강수력발전주식회사와 당시 만주국과의 공동출자로 발전소 건설을 위한 댐 공사가 시작되었다. 1943년 11월 제1기공사가 완료되었다. 1945년 8월 북한이 인수, 가동해왔으나 6·25때 발전시설의 70% 가량이 파괴되었다. 1954년 1월 소련의 원조에 의하여 완전 복구되어 1958년 8월부터는 설비용량 70만㎾로 정상가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댐의 위치가 북한지역과 중국을 경계로 한 압록강수계에 입지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과 중국은 1955년 한중압록강수력발전회사를 설립하고 쌍방이 공동 관리, 운영하고 있다.

황금평(黃金坪)

사진5

황금평(黃金坪)은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섬으로, 옛 이름은 황초평(黃草坪)이다. 황금평은 압록강의 오랜 퇴적으로 인해 중국 영토에 맞닿아 있으며, 중국측 영토와의 경계에는 철조망이 설치되어 왕래가 통제되고 있다. 북한은 이곳을 경제특구로 개발하고자 한다.

오회분(五盔墳) 5호묘

사진6

중국 길림 성 집안현 태왕향 우산촌에 있다. 1945년 이전 일본인 학자에 의한 1차 조사 때의 명칭은 통구17호분이었으며, 서강62호묘, 혹은 사협총으로도 불렸다. 북한측의 표기로는 집안 다섯 무덤의 5호 무덤이며, 중국측의 공식 명칭은 집안 통구고분군 우산묘구 제2105호묘(JYM2105)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14).

영광탑(靈光塔)

사진7

영광탑이란 명칭은 이 지방 토어(土語)이고, 원래는 발해 묘탑이다. 묘탑으로부터 약 2리 되는 곳에 압록강이 흐르고 있다.

장수왕릉(長壽王陵)

사진8

중국 지린 성(吉林省(길림성)) 지안현(集安縣(집안현)) 퉁거우(通溝(통구))의 룽산(龍山(용산))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돌무지(적석)무덤이다. 장군총은 규모가 태왕릉(太王陵), 천추총(千秋塚) 다음으로 큰 초대형 무덤인데다가, 돌무지무덤 중에서도 형체가 가장 잘 남아 있기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이 무덤이 일본인 학자에 의해 학계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05년이다. 이 무덤의 주인공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데, 중국 측에서는 태왕릉을 광개토왕릉, 장군총을 장수왕릉으로 보고 있지만, 고분의 유품이 모두 도굴당하였기 때문에 추측에 의존하고 있다

혜산시

사진9

혜산군은 근래에 이르기까지 갑산군에 속해 있었으나, 1954년 10월 양강도가 신설될 때 혜산군 혜산읍·촌동리·영흥리·중리와 위연포노동자구가 합쳐져 혜산시를 이루었다(두산백과 2014).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陵碑)

사진10

광개토대왕의 능 비문에는 고구려 건국의 역사, 광개토대왕의 정복사업 등이 담겨 있다.이 비문의 내용 중 고대 한일관계 이해에 중요한 쟁점으로 되고 있는 것이 「백잔신라구시속민유래조 공능왜이신묘연래도해파백잔○○신라이위신민(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新羅以爲臣民)」이라는 부분이다. 일본인들은 이 부분을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와 신라를 격파하고 자기들의 신민으로 삼았다」라고 해석하여 이를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일본부와 연결, 4세기 일본이 한반도 남부에 식민지를 건설했다는 증거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해 해석상의 문제와 일본제국군 참모본부의 위작설 등을 이유로 반박당하기도 한다. 광개토대왕비는 내용 그 자체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서예사나 한문학적인 측면에서도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일송정(一松亭)

사진11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룽징시에서 서쪽으로 약 3㎞ 떨어진 비암산(琵岩山)에 있다. 원래 산 정상에 우뚝 선 한 그루 소나무로서 그 모양이 정자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명칭이며, 룽징8경[龍井八景]의 하나로 꼽혔다. 일제강점기에 룽징은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던 곳이었으며, 산 정상에 독야청청한 모습으로 우뚝 선 일송정은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상징이었다. 1933년 윤해영의 노랫말에 조두남이 곡을 붙인 가곡 《선구자》에 나오는 "일송정 푸른 솔"이 바로 이 소나무이다. 일제(日帝)는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이 소나무에 위해를 가하여 1938년 결국 고사시켰다고 전한다. 1991년 3월 12일 룽징시 정부는 한국 각계 인사들의 후원으로 옛 자리에 소나무를 다시 심어 복원하고 정자를 신축하여 그해 9월에 준공하였다. 이후에도 한국 각계 인사들의 협찬을 받아 확장 및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으며, 룽징시 문물관리위원회에서 보호문물로 지정하였다.

명동촌(明東村)

사진12

룽징에서 서남쪽으로 15㎞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1899년 문병규, 남위언, 김약연(金躍淵), 김하규 등 네 가문이 집단 이주해 형성한 정착촌으로 마을 이름은 "동쪽(한반도)을 밝힌다"라는 뜻이다. 윤동주의 조부 윤하현은 1900년 이곳으로 이사 왔으며 1917년 윤동주가 태어났다. 이상설의 서전서숙을 시작으로 한인사회의 지도자로서 독립운동을 주도한 김약연의 명동서숙(明東書塾: 1908년 4월), 캐나다 선교사 베이커가 1920년에 설립한 은진학교·신흥학교·동흥중학, 윤동주로 대표되는 대성학교 등 민족교육을 위한 학교들이 설립됐고 김약연은 윤동주 생가 바로 옆에 명동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윤동주 생가(尹東柱生家)

사진13

1900년경 조부 윤하현이 지은 남향의 기와집으로, 기와를 얹은 열 칸과 서쪽에 자리한 동향의 사랑채가 있는 전통적인 구조로 이루어졌다. 윤동주 가족이 이사 간 후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가 1981년 허물어졌고, 1994년 8월 연변대학 조선연구센터의 주선으로 복원되었다. 윤동주가 유년기에 공부한 방, 방학 때 귀향하여 시를 쓰던 방이 당시 그대로 만들어져 있다. 주변에는 외숙인 김약연(金躍淵)이 세운 명동교회, 윤동주 기념비, 윤동주가 1939년 9월에 쓴 시 〈자화상自畵像〉에 나온 우물, 명동학교 유적, 일본인들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처형할 때 사용했던 나무 그루터기 등이 있다.

해란강(海蘭江)

사진14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로 시작하는 가곡 <선구자> 의 가사를 통해 알려져 있는 두만강의 지류로 룽징 근처를 돌아 두만강으로 흘러들어간다. 일송정은 용정 시내에서 4km 정도 떨어진 비암산의 낮은 언덕 위에 있다. 본래 일송정에는 정자 모양을 한 수려한 자태의 소나무가 있어 그 이름이 붙었으나, 이곳이 민족정신을 고양시키는 곳이라 하여 일제가 나무에 약을 투여해 고사시켰다고 한다.

연변 박물관(延邊博物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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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박물관은 중국 지린[吉林(길림)] 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옌지[延吉(연길)] 시의 진달래 광장에 자리한다. 중국 조선족의 문화와 이주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유물과 고고학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0년 4월 조선족 민속전시관으로 출발한 뒤 1980년대 조선족 민속박물관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대성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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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징(용정)중학은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던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위치한 학교이다. 항일민족시인인 윤동주의 모교인 룽징 중학은 1946년 광명중학교, 은진중학교, 대성중학교 등 룽징[龍井(용정)] 지역의 6개 학교가 통폐합하여 세워졌다. 2011년 6월 룽징 중학 내 ‘대성중 전람관’ 1층에 윤동주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교실 모습을 복원한 ‘윤동주 교실’이 문을 열었다. 당시 교실 모습을 담은 그림이 걸려 있으며, 윤동주가 공부했던 책상 위에는 윤동주의 조각상이 놓여져 있다. 윤동주를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공부했던 곳으로, 1900년대 초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의 룽징 지역과 주변의 역사를 담고 있는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연변과학기술대학교
(延邊科學技術大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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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개교한 중국 최초의 중외(中外) 합작대학이다. 1988년 중국 옌지시 시정부와 한국인 김진경(金鎭慶)이 중국연변조선족기술대학 설립 합동서를 체결한 뒤, 1990년 3월 기술전문대학에서 4년제 기술대학으로 변경하였다. 1992년 연변과학기술대학으로 교명을 개칭하고 9월 16일 1년 과정의 부속 산업기술훈련학교가 문을 열었다.

도문대교(圖們大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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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먼다차오(图们大桥)는 약 100m 길이의 다리로 이 위에서 중국과 북한의 영토가 나눠진다. 다리에서 이어지는 북한 영토는 함경북도에 속하는 남양인데 밝을 때는 집단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망해각(望海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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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이거는 1993년 건립된 3층 누각으로서 건축면적 650㎡, 전체 높이는 14m이다. 방천초소(防川哨所) 동쪽에 솟아 있는데, 이곳에 올라서면 바다 너머로 오른쪽으로 두만강이, 가운데로는 중국이, 왼쪽으로는 러시아가 한눈에 들어온다. 왕하이거라는 명칭은 이처럼 '한눈에 세 나라가 바라보인다(一眼望三國)'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누각에 걸려 있는 '왕하이거(望海閣)'라는 편액은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을 지낸 류화칭[劉華淸]이 썼다.

녹둔도(鹿屯島)

사진20

조선 태조가 개척한 이래 400여 년간 조선의 영토였으나 영ㆍ정조 시대 이후 두만강의 퇴적 작용으로 녹둔도의 북쪽이 연해주와 연결되고 1860년(철종 11년) 청나라가 러시아와 베이징조약을 맺으면서 러시아에 넘겨진 후 현재까지 러시아의 영토로 남아 있는 땅이다. 조선 말 혼란한 조정상태로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파악되지 못하다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고종이 1889년 청나라에 항의하면서 반환을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이 구 소련과 국경조약을 체결하면서 베이징조약을 그대로 이어받음으로써 녹둔도(서울대 이기석 명예교수는 32㎢ 추정)가 러시아 영토임을 인정해 준 셈이 돼 버렸다. 이후 러시아는 2004년 북한 접경의 국경 강화를 이유로 녹둔도 남쪽에다 제방을 쌓아 이 섬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유지하고 있고, 지금은 러시아 군사기지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연수전 체크사항

예약 시 유의사항 - 여권이 있으신 분은 여권에 기재된 정확한 영문이름을 알려주세요.
- 계약 후 3일 이내에 1인 총 금액의 10 ~ 20%를 계약금을 입금하셔야 계약이 성립됩니다.(호텔에 따라 변동)
- 계약금은 상품별로 상이 하므로 자세한 사항은 문의 바랍니다.
여권/비자 - 여권 기간만료일을 확인하시어, 출발일로부터 최소 6개월 이상 남아 있어야 합니다.
- 여권 기간만료일이 6개월 미만이거나, 이미 만료된 여권은 기간연장 또는 재발급 하셔야 합니다.
- 새 여권을 만들어도 영문이름은 구 여권과 동일하게 발급되므로, 구 여권의 영문이름을 알려주세요.
- 여권 발급 후 여권 복사본을 팩스로 보내주세요.
유류할증료 - 국제유가와 항공사의 영업환경을 고려한 건설교통부의 '국제선 항공요금과 유류할증료 확대방안’에 따라
예고 없이 인상되거나, 인하된 금액이 반영될 수 있습니다.
여행자보험(1억원) - 모든 연수 프로그램은 여행자 보험에 가입됩니다. (만 1세 이상 ~ 만 89세 미만의 경우만 해당됩니다.)
일반 상해 - 최대 300만원, 질병 - 최대 100만원, 휴대품 도난 및 파손 - 최대 30만원 등
- 상세내용은 약관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1억 여행자 보험 가입)
연수 사전 특강 - 출발 전 연수 사전 특강은 1일 4시간 진행됩니다.
- 연수 사전 특강 일정은 참석 기관과 협의하여 지정할 수 있습니다.
여행준비물 - 가방은 연수기간에 맞춰 크기를 선별하여 준비하시고, 보조가방(쌕, 크로스 백)을 따로 준비하시면 좋습니다.
- 의류와 속옷, 양말 등은 여행지의 기후, 일정에 맞춰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 칫솔, 치약, 면도기, 샴푸, 린스, 화장품, 여행용화장지 등 개인위생용품은 따로 준비하셔야 합니다.
- 카메라, 필름, 건전지는 넉넉하게 준비하시고, 수첩과 필기구 등도 준비하시면 편리합니다.
- 개인취향에 맞게 컵라면, 김 등 밑반찬을 준비하시고, 구급상비약도 챙기시기 바랍니다.
- 건전지, 면도기, 손톱 깎기, 칼 등은 기내용 가방에 넣을 수 없으므로 부치는 가방에 넣어주세요.
- 100ml를 초과하는 액체, 분무, 겔류 등도 부치는 가방에 넣어주세요.
- 라이터는 부치는 가방에 넣을 수 없으므로 휴대가방에 1인 1개만 허용됩니다.
출국 시 유의사항 - 3월 1일부터 국제선을 이용하시는 모든 승객들은 100ml가 초과하는 액체, 분무, 겔류의 기내 휴대 반입이 제한되었습니다.
- 100ml이하의 등 물품은 별도의 정해진 팩(일명 지퍼 백)에 넣어 반입하셔야 되며, 100ml를 초과하는 물품은 반드시
부치는 가방에 넣으시기 바랍니다.
- 항공보안통제지침시행에 대한 자세한 문의사항은 항공안전본부 홈페이지 (http://www.casa.go.kr)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위의 사항으로 출국수속시간이 지연될 수 있으므로 정해진 미팅시간을 준수하여주시기 바랍니다.
특이사항 - 유명 관광지 및 기차역 주변, 기타 사람이 많이 밀집된 곳에서는 소매치기 또는 분실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므로
특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연수 중 도난에 의한 물건 분실의 경우 반드시 현지 경찰서의 경위서(Police report)를 받아오셔야
보험적용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본인 실수에 의한 분실은 보험 처리되지 않습니다.)